2010년 2월 11일 목요일

전산쟁이의 작은 반란

오늘 출근을 안해버렸다. 어제가 급여 입금일 - 개인사업자로 계약했으니 대금결제일이라 해야하나? - 이었는데 돈이 안들어왔기 때문이다. 계약서상엔 분명 한달 일하면 다음달 10일 입금해준다고 적혀있다. 전산개발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뭐 그만한 일로 그러냐고 하는 분들 많을 것이다. 보통 며칠은 기본이고 몇달씩 급여가 밀리는 일이 비일비재한것이 현실임을 모르는게 아니다. 나부터도 그런일을 많이 겪어봐서 잘 안다. 내가 프리로 나서게 된 것도 마지막 직장이 급여를 4개월 밀린채 폐업해버린게 계기가 되었었다. 그래서 프리로 나서게 되었고, 경력이 쌓이고 자신감이 생기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챙길것은 확실해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더이상은 바보같이 월급 밀리면 그 밀린 돈때문에 어쩔수없이 일하고, 일하면 일할수록 걱정과 체불임금이 늘어나는 억울한 일은 당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더 나의 자존감을 스스로 지키면서 일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12년차 프로그래머. 기업 SI 개발을 주로 해왔고, 남들처럼 초기엔 어떤 회사 직원이었다. 98년 IMF 이후로 전산은 무조건 아웃소싱, 말이 좋아 아웃소싱이지 그냥 앵벌이 같은 존재들로 전락한거다. 원청이 갑이면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면 을, 병, 정.... 이렇게 중간에 수수료만 먹는 회사들이 있고 정작 일하는 개발자는 몇푼 먹지도 못한다. 물론 88만원 세대니(요즘 나온 말이지만) 44만원 세대니 하는 것보다는 많이 벌긴 한다. 어쩌면 그래서 그렇게 단합을 못하는건지도 모르지.. 모래알처럼 흩어져서 나만 돈 많이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언젠간 이놈의 전산쟁이 노릇 때려치고 귀농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개발자들... 뭐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분명 계급이 존재한다. 그누구도 그걸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소위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필수라고 한다. 개천에서 용나는 건 이젠 전설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나의 계급은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글을 쓰는 나나 읽는 여러분이나 중간 이하의 계급 정도밖엔 안될 것이다. 그런 계급이 뭉쳐서 나름대로 살기좋은 사회를 이룩한 서구유럽의 나라들이 참 부럽다. 대기업과 재벌이 돈을 벌어야 분수에 물이 넘치듯 흘러내려 가난한 사람에게도 혜택이 간다는 말도안되는 말을 믿고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을 비난하며 부자기득유지정당을 밀어주는 이상한 나라가 지금 내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이다.

급여안나와서 출근안했다는 말을 하다가 옆으로 샜다.
지금은?? 회사에 나와있다. 오후에 집에있는데 입금했으니까 정상적으로 계속 일 잘 해달라는 전화가 여러사람에게 왔다. 어제 퇴근하면서 입금되는거 확인되면 출근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느즈막하게 회사에 나와있는 것이다. 반나절만에 나의 당장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왠지 쓸쓸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땅의 가난한 계급들이여.. 제발 정신좀 차리고 안목을 기르자. 돈있고 빽있는 국민만 국민으로 인정하는 버릇없는 위정자들에게 언제까지 불평만 하고있을텐가!... ㅡㅡ


댓글 4개:

  1. IT회사에 다니고 있는 입장에서 많이 공감합니다. 기술인력이라는 것이 잘해야 본전 취급 받는 게 현실이지요. 그래도 개발자는 좀 낫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매니지먼트(서버관리,유지보수,하드웨어) 쪽은 완전 갑을병정에 정 취급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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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산쟁이로 산다는게 쉽지않은것은

    일자체에대한 싫음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에의함이 항상더큰것같네요

    프로젝트의 금액을 실제의 실력이아닌 등급으로 판단되는것이 참씁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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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엇.. 댓글이 달렸네요.. ^^



    지금 하는 플젝이 정부쪽 일이거든요.. 공공프로젝트라고 하나요? 하여튼 일반 회사들에서만 일했었는데 여기 오니 젤 적응 안되는게 공무원이나 공기업의 소위 갑이라는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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